[살며 생각하며] 잊지 말아요
목련은 결국 피지 못했다. 벌겋게 물들었던 꽃봉오리는 이제 갈색이 되어 있다. 꽃이 핀 것을 시샘한다는 추위 때문이다. 봄이 오면 견디기 힘든 것이 폭죽처럼 한꺼번에 피어나는 목련의 화려함이다. 언제나 봄맞이에 서툰 나는 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꽃이 피지 못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발상인가. 삼사월 꽃들이 피면서 모든 것들이 살아 움직인다. 얼었던 땅은 녹아 꿈틀거리고 배고픈 울새들은 커다란 눈을 들어 부지런히 먹이를 찾는다. 지빠귀는 지붕 꼭대기에 올라 고운 노래로 짝을 부른다. 이렇게 세상은 분주한데 목련은 피지도 못하고 스러졌다. 그리고 4월이 왔다. 시인 토마스 엘리엇(Thomas Sterns Eliot, 1888~1965)는 젊은 시절 친구를 잃은 슬픔과 제1차 세계대전으로 피폐해진 마음을 황무지에 비유하며 4월을 잔인하다고 표현했다. 일 년을 더 기다려야 볼 수 있는 꽃이라 가슴이 저렸다. 갈색의 꽃들은 을씨년스럽게 달려있다. 며칠전 세월호 사건 8주년이 지났다. 세상을 초월한다고 지은 이름이라는데, 세상에 빌붙어 욕심껏 살던 사람이 지은 것이라 어쭙잖다. 8년 전 그날 무책임한 정부와 정부의 각 기관이 서로 머뭇거리며 책임 전가를 하고 있었다. 선장은 뒤도 안 돌아 보고 자신의 안전을 위해 배에서 도망쳤다. 뭐라도 해서 아이들을 구하려던 사람들과는 달리 정부기관은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고 있었다. 머뭇거리는 동안 착한 아이들은 차가운 바다에 남겨졌다. 그나마 생명을 건진 학생들은 일반 어선이 구출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른이라는 사람들의 그 날 행위를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한번 피어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아이들. 내 친척도 피붙이도 아닌데도 이렇게 목이 메어오는데 유족들과 남은 친구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자기 일 아니라고 하며 온갖 욕설과 비방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제 그만 이야기하자고 화를 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어찌 그날의 일이 남의 일이 되는 것일까? 화장도 안 하고 길을 나선 여성들의 마음은 불안하다. 불편하다. 남에게 민낯을 보인다는 것 참으로 힘든 일이라고 말한다. 굳이 비유를 들자면 그렇다.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날은 대한민국의 세수도 안 한 민낯이 온 세상에 알려진 참담한 날이다. 세계에 자랑할 만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어린아이들의 죽음으로 시작되었다. 꽃다운 아이들이 물속으로 사라진 날. 그날을 어찌 잊겠는가? 물망초처럼 푸르고 예쁜 아이들. 꽃말처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목련으로 올 줄 알았던 3월 말의 봄이 꽃샘추위 때문에 망가졌다. 따스한 제주도를 얼어붙게 한 4·3 사건. 순수한 학생들의 희생으로 민주주의가 싹튼 4·19도 4월에 벌어진 일이다. 다 잊지 말아야 한다. 힘이 없어 남에 의해 두 동강 난 나의 모국이 안쓰럽다. 이념이 다르다고 같은 민족끼리 총을 겨누고 있는 현실에 화가 난다. 잊힌다는 것이 얼마나 쓸쓸한 일이겠는가? 존재 하나로 기쁨과 신비로움이었던 아이들. 세상이 온통 어둠이어도 아이들만 있으면 살만하다던 부모님들이 가슴속 깊이 아이들을 묻었다. 가수 백지영의 노랫말처럼 같은 하늘 다른 곳에 있어도 잊지 말라고 한다. 잊지 말아요. 부탁드려요. 목련보다 화려하던 아이들을 부디 잊지 말아요. 고성순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대한민국 민주주의 며칠전 세월호 thomas sterns